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면허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첫 번째 수능이 끝나자마자 면허를 따라고 책을 사다 주셨지만, 나는 다시 수능을 보고난 후에도 차를 몰고 다닌다는 것에 부러움이라던가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혹시라도, 정말 만에 하나 너무나 다급한 사고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따 놓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내 차를 끌고 출퇴근을 한다거나 원하는 곳을 자가용을 데리고 가야겠다고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난 버스를 좋아하니까. 운전을 하다가 멍해지거나 다른 생각을 하다가 사고가 날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요즘 들어 이 나만의 신념에 금이 가고 있다. 정말 외진 곳으로 여행을 해야 할 때. 새벽 5시 산 정상에 올라 남해안을 보려 했을 때, 사투리를 쓰던 중년의 사내는 내게 왜 차가 없이 여행을 왔나며 의문스런 눈빛을 보냈고, 난 그 여행의 경비중 1/3을 택시비로 할당해야 했다. 오늘 간만의 여행을 준비하는 나는 또 그 편리한 깡통 같은 존재의 부재가 아쉽다. 정말 정말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곳으로 여행을 가려하는데 교통편이 없어 난감하다. 어둑어둑 해질 때까지 숙소를 못 잡으면 조금 무섭다. 요즘은 해가 짧아져서 더욱 그러하고, 면 단위의 위치로 여행을 가면 더더욱 그러하다. 아직 어린가보다. 집을 울릉도에 두고 티코를 집삼아서 전국을 돌아다니던 어느 흥미로운 스님이 생각난다. 그 티코는 참 실팍해 보였다. 지금 나는 그 차가 부럽다. 미륵산은 내년에 면허를 딴 뒤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얼마전 어느 50대 등산동호회 선생님과의 산 정상에서의 대화.
"작가선생, 통영 미륵산에 가봤어요?"
"아유~, 전 여기도 처음입니다."
"한번 기회가 되면 가봐요, 거기는 새벽부터 작가선생같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있어요."
"와, 여기도 참 대단한데, 꼭 가보겠습니다."
"미륵산은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까지 보여요. 우리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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