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low/Daily event

스물 한 살 - 회고

이탄희 2008. 12. 31. 04:14

 

 

반사기에 가깝게 스무 살이라 우기던 한 해도 막바지다.

티비에선 여지없이 가수들이 무더기로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

저놈에 원더걸스는 몇 번이나 나오는지 다 세어봤어야 되.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의 피조물 정도인 후회와 탄식은 없지 않아 조금은 나타난다.

돌아보면 올 한해는 무언가 가시적인 족적을 남기기 위한 한 해라기 보다는

자아라는 그 피상적인 형상을 움켜쥐기 위한 몸부림의 해가 아니었나싶다.

어떤 이는 스무 살에 처음 부린 카메라와 타자기가 인생의 기로에 좋은 조타가 되었다고 하고

나도 스무 살에 카메라를, 또 일기장을 다시 손에 잡았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황보놈을 보며 머리가 그게 뭐냐며 욕을 해주지만 군대나 가라는 필살기를 맞고 만다.

입대를 자꾸 미룬다. 웃기게도 대학 입학 전부터 꿈꿔 오던 일이긴 하지만 혼자서

미친놈처럼 수업도 잔뜩 빼먹으며 여행을 다니던 유령 같던 해를 보내고 나자

뭔가 이제 남길 수 있는 지표를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생각, 더하기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과의 인연을 확고히 해 두어야겠다는 생각.

방학하고 미스터피자를 몇 번을 갔는지 서양인 다 됐다. 집에 산더미처럼 쌓인 빵을 밥 대신 먹으니

이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건지 살에 반죽이 붙는 건지 분간이 안 된다. 살찌고 싶다.

주어진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최고가 되어있지 않을까.

예전엔 정말 꿈에도 수긍 못했는데 요즘 들어 자꾸 떠오르고 되새기게 되는 말.

올 한 해, 지인들에게 여자친구 생긴 것 아니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내가 보기에도 전과 비교해 나는 제법 밝아졌다. 뭐 누구를 대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특히 혼자 있을 때는 어디서든 묘한 자신감에 휩싸인다.

더해가는 나이의 요수적 결과일 수도 있고, 07년 한 해의 경험, 고통, 그 결과일 수도 있다.

아 진짜 하루 남았구나. 작년 고생했던 만큼 올해 내게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신 것은 아닐까.

2학기가 들어서서 눈길이 잦아든 일기장을 뒤적여보면 참, 작은 일에 행복했던 때가 많다.

동네 슈퍼 꼬마가 눈높이 선생님과 어눌한 발음으로 한글을 읊고 있을 때.

약간은 이른 여름 찾은 산 중턱의 도서관이 때마침 휴관일일 때. 그때, 넘어오는 녹빛 바람을 느낄 때.

 

주어진 조건과 인연에 감사하는 내가 될꺼야. 올해 초의 그 자신감으로 최선을 다할꺼야.

행복은 늘 내 옆에 있어. 너의 곁에도. 올 겨울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하네.

새벽에 아빠랑 때밀러 가기로 했는데, 아웅 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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