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low/Message for you

여행하라.

이탄희 2008. 11. 8. 04:10

 

  오늘의 글이다. 사실 어젯밤의 글이 되었어야 했지만, '누군가와 함께'라는 것은 원하던 바와 언제나 평행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땅거미가 야속하게도 빠르게 내리고 졸리움이 서서히 눈썹 위에 내리려 할 때, 그 때의 글이었어야 하지만, 이 생활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당신에게 물어본다. 언젠가 한번은 현실과 맞잡은 손을 지긋이 놓아주고 싶던 때가 있진 않았는가? 되말하면, 어디론가 살며시 떠나고 싶던 때가 있었는가? 혹여 그러한 느낌을 펜촉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미묘한 감정으로 억누르진 않았는가? 그것은 당신이 여행을 언제나, 누구나 하는 자차분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만난 적도 없는 신에게 시간을 달라 조르거나, 파리 목숨 같은 일용직에 연연하며 무고한 부모들의 욕을 하고 있진 않은가. 언제나 그렇게 바쁜 척 해보시라. 육중한 현실은 그렇게 반가운 '척' 당신을 맞아주다 서서히 멀어져 갈 것이다.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며 서로 네 것이라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시간이며, 우연히 보게 된 지갑 속 영수증의 출처를 확인하는 것도 시간이며, 하얀 옷에 묻은 티끌을 투덜거리며 털어내는 일도 시간이다. 바로 그렇게 털어내 보아라. 너에게 붙은 그 순진한 시간들을 툴툴 털어보면 순천 어드메 산하나 만큼 나오지 않을까.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다가 길을 잃는 것을, 그 정답 없는 느낌을 좋아하는 나는 오늘도 여지없이 지도를 뒤적이고 재수시절 빼곡히 필기해둔 지리 참고서를 훑어본다. 그 표면에는 앞으로 남은 나의 미래가 나침반처럼 색색이 칠해져 있고, 그 내면에는 한 켠에 자전거를 대놓고 평상에서 잠시 졸고계신 어느 푸른 마을의 할아버지가 있고, 냇가에서 돌아오지 않는 열 살의 청량함을 만끽하는 소녀가 있고, 한 해, 또 한 해 지나가는 세월을 하릴없이, 오히려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는 내가 있다.


  여행자의 경험은 그 느낌을 함께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저 흔한 풍경 얘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행자의 눈은, 5층 높이에서 연약한 유리를 내던지는 상쾌함을, 아쉬운 낙방에 오열하는 어느 고시원생의 눈물을 머금고 있다.


  인생은 여행이고 또 여행이 바로 인생이라 하지 않는가. 이 거리와 하늘은 당신의 것이다. 이곳에 스스로를 맡기면 당신도 나처럼 닿지 않는 저 황홀함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 운명의 항해사이다.